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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2년 전만 해도 AI는 우리에게 친절한 보조 도구에 가까웠습니다. 궁금한 걸 물어보면 답을 찾아주고, 긴 문서를 요약해 주거나 기획서 초안을 잡아주는 똑똑한 비서였죠. 덕분에 우리가 AI를 평가하는 기준도 꽤 단순했습니다. "얼마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답하는지", "생성된 정보를 믿을 수 있는지" 정도였고요.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릅니다. AI와 대화를 나누는 수준을 넘어 우리 대신 실제 업무를 하나둘 처리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AI를 바라보는 기준도 마치 직원의 업무 성과를 평가하듯 꼼꼼하고 복잡해졌죠.
최근 제조 산업 AI 시장에서 눈에 띄는 변화도 유사합니다. 이전까지는 AI가 부족한 재고를 알려주는 '조언자'였다면, 오늘날 AI는 리드 타임을 고려해 직접 주문을 넣는 '실행자'에 가깝습니다. 단순한 알림 단계를 넘어, 정해진 규칙 안에서 업무를 직접 완수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죠.
이러한 흐름은 글로벌 기업들의 움직임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라클(Oracle)은 최근 공급망 프로세스를 직접 실행·지원하는 AI 에이전트를 자사 클라우드 SCM에 내장했습니다. 또한 가트너(Gartner)가 "2026년까지 기업용 앱의 40%에 AI 에이전트가 들어갈 것"이라고 전망한 것도 산업의 거대한 방향 전환을 보여주는 신호입니다.
이제 우리는 실제 업무에서 AI가 어디까지 사람을 대신할 수 있는지, 그 범위와 권한을 누가 통제할 것인지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이 필요합니다. 마치 경력 직원 채용처럼 말이죠.
최근 산업 현장에서 에이전틱 AI(Agentic AI)라는 개념이 핵심 화두로 떠오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에이전틱 AI란 단순히 주어진 질문에 답하는 수준을 넘어, 목표 달성을 위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필요한 도구와 시스템을 직접 활용해 움직이는 지능형 시스템을 뜻합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AI 에이전트의 핵심도, 결국 이러한 에이전틱한 역량을 갖춘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기업의 고민은 단순히 똑똑한 AI를 도입하는 단계를 넘어섰습니다. 이 능동적인 AI 대리인에게 어디까지 권한을 부여하고, 어떤 책임과 통제 체계 아래 둘 것인지 설계하는 것이 성패를 가르는 핵심 과제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AI 에이전트를 도입한다고 해서 모든 제조 현장이 하루아침에 다크 팩토리가 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나아갈 방향은 명확합니다. AI가 그저 조언을 건네는 비서를 넘어, 현장에서 직접 판단하고 행동하는 실무자로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술은 점점 발전하는데 왜 현장 도입은 유독 느릴까요? 진짜 이유는 AI 모델의 성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이 강력한 기술을 산업 현장에서 안전하게 통제할 운영 인프라가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최근 발표된 글로벌 기관들의 리포트를 뜯어보면, 이 막연한 고민이 2가지 뚜렷한 장벽으로 나타납니다.
가장 먼저 부딪히는 장벽은 보안과 권한의 문제입니다. AI가 단순히 조언만 하던 단계를 넘어 직접 실행에 나서게 되면, 이제 우리는 AI를 조직의 시스템을 직접 다루는 새로운 행위자로 취급해야 합니다. 가트너(Gartner)가 2026년 사이버 보안 트렌드에서 AI 에이전트에 대한 보안 감독과 신원 및 접근 관리(IAM)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죠.
마치 신입 직원에게 사원증을 발급하고 출입 구역을 엄격하게 제한하듯, AI 에이전트에게도 시스템 접근 권한을 명확히 주고 그 기록을 추적하는 감사(Audit) 체계가 필수적입니다.
두 번째 장벽은 시스템과 책임 구조의 부재입니다. 딜로이트(Deloitte)는 CES 2026 리뷰에서, AI 경쟁의 무게중심이 모델 성능 그 자체보다 실제 실행과 운영을 떠받치는 인프라 역량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제조업에 AI를 도입한다는 건 단순히 소프트웨어 하나를 설치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무실의 정보 기술(IT)과 공장 현장의 운영 기술(OT)을 어떻게 안전하게 연결할지, 예외 상황이 발생하면 누가 책임질지 같은 운영 기준이 정교하게 설계되어야 합니다. 딜로이트를 비롯한 글로벌 리포트들은, 이러한 인프라와 거버넌스의 공백이 AI를 PoC나 파일럿 단계에만 머물게 하는 핵심 요인이라고 지적합니다.
강력한 실행력을 가진 AI 에이전트가 등장했음에도 결국 도입을 가로막는 진짜 병목은 AI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실행을 뒷받침할 권한 체계와 책임 소재, 그리고 투명한 기록이 연결된 견고한 운영 구조의 부재에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아무리 스펙이 뛰어난 신입사원이라도, 입사 첫날부터 공장 핵심 시스템의 마스터 권한을 통째로 주지는 않습니다. 먼저 역할을 명확히 정하고, 상사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차근차근 업무를 맡기는 온보딩(Onboarding) 과정을 거치죠. AI 에이전트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AI에게 맡길 일의 범위를 명확히 하는 것입니다. 이 단계의 핵심은 단순히 기능을 파악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역할과 책임을 설계하는 데 있습니다.
중요한 질문은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누구의 승인을 받아, 어디까지 접근하고 실행할 수 있는가?”입니다. 이 기준이 먼저 정리되어야 다음 단계도 안전해집니다.
AI가 실제 시스템에 연결될수록, 회사는 이 AI를 사람의 계정을 몰래 빌려 쓰는 ‘투명 인간’처럼 다뤄서는 안 됩니다. 대신, 명확한 권한과 책임을 가진 새로운 행위자로 정의해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가 생겼을 때 기록을 추적하고, 철저하게 통제할 수 있습니다.
권한의 범위를 정했다면 다음은 실전 테스트입니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단 1초의 중단도 허용되지 않는 실제 생산 라인에서 AI 에이전트를 곧바로 시험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작은 설정 오류 하나만으로도 제품 품질 사고나 납기 지연 등 치명적인 나비효과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실전에 올리기 전, 안전하게 연습하고 검증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실제 데이터를 복제한 샌드박스, 스테이징 시스템, 혹은 제한된 업무만 수행하는 시범 운영 구간처럼 실행은 하되 그 영향은 통제할 수 있는 조건을 먼저 만들어야 합니다. 특히 고위험 또는 고비용 공정일수록 이러한 사전 검증 단계는 사실상 필수에 가깝습니다.
마지막 단계는 통제권과 책임 체계를 세우는 일입니다.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해도, 실제 운영 단계에서는 예상 밖의 이슈를 마주하게 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AI의 위기 대처 능력 자체가 아닙니다.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누가 시스템을 즉시 차단하는 비상 중단 권한을 행사할 것인지, 어떤 기준으로 원인을 추적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기준으로 다시 가동할 것인지에 대한 조직 차원의 합의된 규칙입니다.
이제 제조 산업의 경쟁력은 AI 모델의 성능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를 통제하는 거버넌스와 운영 구조를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했는지가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부서 간 역할이 엄격하게 나뉜 제조 현장일수록, 비상시의 책임 소재와 통제 기준을 미리 정해두는 것이 AI 도입 속도를 안전하게 높이는 지름길이 됩니다.
더 똑똑한 기술보다, 더 안전한 실행 구조를 먼저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우리는 과연 그것을 산업 현장에서 안전하게 활용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AI 에이전트가 단순한 조언을 넘어 실제 실행 단계로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이 질문은 더 이상 기술 개발자들만의 고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현장을 운영하는 사람, 시스템을 책임지는 사람, 그리고 조직의 기준을 세우는 사람이 함께 답을 만들어가야 하는 질문이 되었죠. 요즘 AI 뉴스에서는 누가 더 뛰어난 모델을 만들었는지가 많이 보입니다. 물론 성능도 중요합니다. 다만 실제 제조 현장에서 도입 성패를 가르는 기준은 조금 다르게 작동합니다. 얼마나 뛰어난 모델을 도입했는가보다, 그 AI의 실행을 어디까지 허용할지, 어떻게 검증할지,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기준으로 멈추고 다시 시작할지를 설계하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AI가 더 많은 실무를 수행할수록, 오히려 사람의 역할은 더 선명해집니다. 기술 그 자체의 화려함보다, 그 기술이 현장에서 신뢰할 수 있는 실행으로 이어지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지. 써로마인드는 앞으로도 여러분과 함께 그 기준과 방법을 꾸준히 고민하겠습니다. |
이 글에 인용된 데이터와 기사는 원 뉴스레터 발행일(2026년 2월 27일) 기준입니다.